피아제는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이다. 192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비네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피아제는 영어 지능검사의 프랑스판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항에 성인들과는 달리 오답을 하는 아이들의 대답에 매료되었다. 이는 아이들이 어른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단서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들을 어른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만 지식의 양과 사고능력은 부족한 작은 어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피아제는 어린 아이들이 어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불연속적으로 발달하는 4가지 인지발달단계를 제안했다. 각 발달단계는 질적으로 다르며,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행동이나 개념, 생각이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피아제에 의하면 인지발달 과정에서 생물학적인 성숙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 성숙은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향상에 비유할 수 있다. 성숙을 통해서 인지적 기능이 향상되면서 더 빠르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한편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달되는 인지능력은 소프트웨어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들은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이에 적응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응을 하며, 이 과정에서 인지 능력을 형성한다. 때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주변 환경에서 발견하는 것 사이에 모순이 있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지능력의 변화가 일어나며, 이는 마치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향상시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인지 과정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재조직화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근육의 발달과 같은 신체 상의 변화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인지 능력도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적응에 필요한 구조를 형성(Piaget & Bringuier, 1980)해 나간다.
인지구조와 도식
피아제는 지적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인지능력을 인지구조(cognitive structure)라고 불렀다. 우리는 인지구조를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직접 관찰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지적인 조작을 하는 것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다. 인지구조는 안정적이며, 광범위하게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체계로 정의한다. 이는 많은 도식들이 조직화되어 형성되며, 부분들의 단순한 산술적 총합이 아니라 조직된 전체이다. 한 개인의 발달단계의 변화는 인지구조 때문에 일어난다.
인지구조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도식(schemas)이라고 한다. 도식은 “일관성이 있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정신적 및 신체적 행동(action)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여러 하위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하위 행동은 핵심적인 의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어난다”(Piaget, 1952). 도식은 어떤 세계와 관련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적 표상의 조합(set)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여 우리는 그 세계를 이해하고 대응한다. 도식은 마치 인지구조라는 건물을 이루는 벽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도식은 좁은 범위의 환경에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한 예로, 부모가 아기에게 처음으로 딸랑이라는 장난감을 준 상황을 생각해보자. 딸랑이는 작은 아령처럼 생겼으며, 안에 작은 입자가 들어있어서 흔들어 주면 소리가 난다. 처음 딸랑이를 손에 쥔 아기는 아직 딸랑이 도식을 갖고 있지 못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장난감을 입으로 빨기도 하고 손으로 흔들기도 하다가, 장난감으로 자기 머리를 치고 아파서 울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서 딸랑이 도식이 생기면 자기 머리를 때리지 않고, 소리를 내면서 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딸랑이 장난감도식은 딸랑이와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만 유용하다. 고리걸기와 같이 다른 장난감을 주면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새로운 도식이 생긴다. 딸랑이 도식과 고리걸기 도식이 조직화되어 보다 일반적인 도식이 생기게 되며, 이후에는 모양을 맞춰서 넣기와 같은 처음 보는 장난감도 잘 가지고 놀게 된다.
지적인 활동을 할 때에도 도식이 형성되고 발전된다. 단순한 예로 보존 도식을 들 수 있다. 같은 크기의 찰흙 덩어리 두 개를 하나는 가늘고 긴 선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굵고 짧은 선 모양으로 만들면 어린이는 각각의 찰흙의 양이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두 경우의 찰흙의 양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길이는 다르지만 양은 같다는 보존 도식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같은 크기의 찰흙 덩어리 두 개를 하나는 공 모양으로, 다른 하나는 사각형으로 만들면 처음에는 두 물체의 양이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알게 된다. 이 경우 형태는 달라도 양이 같다는 보존 도식이 형성된다. 이와 같은 도식이 구조화되어 처음의 양이 같으면 길이, 형태, 모양이 달라져도 그 양은 같다는 보존논리 능력이 형성된다.
적응: 동화와 조절
피아제는 인지 발달을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Piaget, 1952). 인지발달은 도식의 발달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modation)로 구분한다. 동화는 기존의 도식에 맞추어서 새로운 경험, 상황, 물체를 이해하거나 다루는 과정이다. 모양 맞추기 장난감을 비유하자면 도식은 장난감의 모양 구멍과 같다. 같은 모양의 조각을 도식에 끼워 넣는 것을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조절은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을 이해하거나 다루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도식이나 인지구조가 적절하지 않아서, 이를 수정하는 것이다. 즉 모양 맞추기 장난감에는 없는 모양의 조각이 있으면 새로운 장난감을 찾거나 아니면 이전 장난감에 새로운 모양의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인지적인 예로는 말(horse) 도식을 가진 아이가 얼룩말을 보고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동화이며, 말이 아니라 얼룩말임을 알게 되어 도식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를 조절이라고 한다.
인지적 평형화
피아제는 인지발달이 점진적으로 일정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큰 변화가 없는 시기와 도약이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도식을 이용해서 대부분의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 즉 동화가 일어나고 있는 있을 때를 인지적 평형상태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정보를 자신의 도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 불쾌한 상태인 인지적 비평형상태가 발생한다. 이 때 조절을 통해서 새로운 도식을 만들어서 비평형상태를 극복하여 다시 평형상태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인지적 평형화라고 한다. 인지적 평형화는 학습을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4단계
피아제는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이루어진 인지발달 4단계를 제안했다. 모든 아이는 이 네 단계를 순서대로 거치게 된다. 개인별로 발달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단계를 건너뛰지는 않으며, 어떤 아이들은 후기 단계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감각운동기
감각운동기는 대략 태어나서 생후 2년까지의 기간이며 매우 빠른 성장을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신의 감각과 행동을 통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서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이 시기의 주요 특징은 대상 영속성(object permanence)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물체를 감추어도 그 물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체에 대한 도식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전조작기
전조작기는 대략 2살에서 7살까지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상징적으로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단어나 물체가 다른 것을 나타내도록 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빗자루를 말인 것처럼 놀이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논리나 변환, 조합, 아이디어 분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조작적 사고를 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보존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같은 양의 물을 모양이 다른 용기에 담으면 더 가득 차 보이는 용기의 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는 세상에 적응해 나가면서 경험을 쌓아간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지 못한다. 또한 상황의 한 특면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언어 발달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구체적 조작기
대략 7세에서 11세 사이의 기간을 말하며, 아직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발달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피아제는 이 시기가 논리적이고 조작적 사고가 시작되기 때문에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물리적 실체에만 논리적 사고나 조작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 조작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수, 면적, 부피, 방향에 대한 보존 논리와 가역성을 이해한다. 귀납적 추론은 잘 하지만, 연역적 추론이나 추상적이거나 가설적으로 사고하기는 어렵다.
형식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는 대략 12살에 시작되어 성인기를 통해서 지속된다. 이때는 구체적인 물체에 의존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사고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학적 계산, 창의적 사고, 추상적 추론, 특정한 행동의 결과 상상 등을 할 수 있다. 가설연역적 추론은 세계에 대한 예측이나 가설을 생성하여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추상적 사고는 가설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과학 학습과 인지발달 이론
과학교육 분야에서 피아제의 이론의 영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과학교육을 통하여 인지발달을 도모하는 연구이다. 피아제 이론의 인지구조와 과학적 사고력은 서로 많은 유사성이 있다. 예를 들면 형식적 조작기에 나타나는 많은 인지 능력은 과학적 사고와 유사하다. 피아제는 진자의 주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 그림자의 투사, 막대 굽히기, 화합물의 혼합, 등과 같은 과학적 현상을 이용하여 12세 이상의 학생들은 대체로 형식적 조작기임을 밝힌 바 있다(Eylon & Linn, 1988). 따라서 과학교육을 통해서 과학적 사고력을 증진시키면 학생들은 쉽게 형식적 조작기에 도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Adey와 Shayer는 과학 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의 인지발달을 가속(Cognitive Acceleration through Science Education: CASE)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1990). 이들은 학교 과학수업에서 모든 형식적 도식과 관련된 수업을 개발하여 2년에 걸쳐서 30시간의 수업을 영국에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 향상을 보인 집단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과학 성취도에서 의미있는 향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CASE프로그램을 2년 동안 중학생들에게 적용하여 그 효과를 조사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그 결과 CASE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사후검사에서 상당한 인지발달이 이루어진 결과를 얻었다(최병순, 외, 2002).
과학교육 분야에서 나타난 두 번째 동향은 실제 학생들의 인지발달단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각 단계에 대한 대략적인 나이를 제시하고 있다. 대략 12살부터 형식적 조작기에 도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조사한 결과는 이론에서 제시한 것과 상당히 다르다. 한종하 외(1982)의 연구 결과 14세에서 16세 사이의 우리나라 학생들의 약 80%는 구체적 조작기이며, 나머지 20% 가량이 형식적 조작기였다. 유사한 연구(최병순, 1987; 문홍무와 최병순, 1987)에서도 약간의 비율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학생의 60%, 고등학생의 40% 정도는 구체적 조작기였으며, 형식적 조작기에 이른 학생은 중학생이 10%, 고등학생이 20~30% 정도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두 시기의 과도기였다.
세 번째 동향은 과학 교재나 수업이 학생들의 인지발달 단계에 적합한 가에 대한 연구이다. 과학교육의 내용이 추상적이므로 형식적 조작기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교육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방법의 추상성이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적합한지에 대한 연구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분석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박지영(2001)은 제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과학1 교과서(물리 영역, 신 교과서)와 제6차 교육과정에 따른 기존의 중학교 과학1 교과서(물리 영역, 구 교과서)가 요구하는 인지 수준을 분석·비교하였다. 그 결과 신·구 교과서(물리 영역)에서 형식적 조작기에 속하는 개념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58.9%, 60.0%로 구체적 조작기에 속하는 개념보다 많았다. 이는 신 교과서의 물리 교과 내용 수준도 학생들의 인지 발달 수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에서는 50% 정도(최병순과 허명, 1987), 고등학교에서는 80% 정도(이원식과 이상온, 1979)가 형식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내용으로 밝혀졌다.
과학교육 연구자들은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개인의 논리적 사고를 주관하는 전반적인 기제로서 인지구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이는 특정 발달단계에 있는 아이는 통합되지 않은 개별적인 지적 조작이 아니라 통합되어 있는 지적 조작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Lawson, 1982). 예를 들면 형식적 조작기에 속한 사람은 이 단계의 모든 조작 능력을 통합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서로 다른 과제에 대한 학생들의 응답을 조사한 결과 과제 사이의 상관관계가 낮게 나타났다. 이 결과 때문에 과학교육 연구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통합된 지적 조작을 사용한다면 과제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구체적 관점을 가진 경우도 많았으며, 어린 아이들도 어떤 영역에서는 매우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도 하였다(Case, 1974). 피아제가 제시한 일반적인 인지구조의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피아제의 일반적인 인지발달 이론은 과학교육 연구 결과를 통해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Lawson, 1982).
참고문헌
권재술, 김범기, 우종옥, 정완호, 정진우, 최병순 (1998). 과학교육론. 교육과학사.
박지영 (2001). 중학교 신·구 과학 교과서가 요구하는 인지 수준 분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최병순, 한효순, 강성주, 이상권, 강순희, 박종윤, 남정희 (2002). CASE 프로그램에 의한 중학생들의 인지가속 효과.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2(4), 837-850.
Adey, P., & Shayer, M. (1990). Accelerating the development of formal thinking i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JRST, 27(3), 267-285.
Coulter, D., Williams, H., & Schulz, H. (1981). Formal Operational Ability and the Teaching of Science Processes. School Science and Mathematics,
Eylon, B.-S., & Linn, M.C. (1988). Learning and instruction: An examination of four research perspectives in science education. 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 58(3), 251-301.
Lawson, A. (1982). The nature of advanced reasoning and science instruction. JRST, 19(9), 743-760.
Shayer, M., & Adey, P. (1992). Accelerating the development of formal thinking in middle and high shool students II: Postproject effects on science achievement. JRST, 29(1), 8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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