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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교육자를 위한 내용/과학 수업 준비

우리가 경험한 좋은 과학 수업

by Valley Andromeda 2022. 9. 4.

학생들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과학 교수학습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이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해보았다.

 

"기억에 남는 아주 좋은 과학 수업은 무엇이었는가?

그 수업은 어떤 특성이 있었는가?"

 

이 질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1) 학생으로서 느끼는 좋은 과학 수업은 어떤 것인지?

(2) 좋은 수업의 특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3) 좋은 수업을 판단하는 학생들의 기준은 무엇인지?

  

개인별로 위 질문에 답을 한 후에는 소집단 토의를 통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을 소개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 토의를 하도록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소집단에서 선정한 좋은 수업을 발표하는 기회도 가졌다. 학생들이 좋은 수업으로 제시한 예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L: 고등학교 3학년 때 들었던 생명과학II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이 과목에서는 매 시간마다 복잡하고 많은 양의 생물학 개념을 배워야 했다. 따라서 복습을 통해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학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선생님은 매 수업을 시작할 때,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지난 수업 내용을 스스로 복습하고 정리하여 학급 앞에서 직접 설명하는 시간(5-10)을 갖도록 했다. 참여한 학생들은 이 경험이 스스로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으며, 점차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좋은 수업으로 선정한 이유

-학생 참여형 수업: 선생님의 설명만으로 구성된 수업이 아닌 학생들이 직접 발표하고 서로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학생참여형 수업이다.

-선생님의 설명과는 달리, 다른 학생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접근법으로 해당 내용을 다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발표자가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분에 대한 학습과 조사, 발표준비가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복습을 통해 당일 수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선생님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학습을 보완할 수 있다.

 

[예 2]

Y: 2 지구과학I 수업시간에 조를 나누어 조별로 교육과정 내에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고, 여러 참고자료(교과서, 논문, 서적 등)를 바탕으로 선생님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발표 자료를 구성하여 발표를 하였다. 발표는 다른 학생들의 질문, 내용에 대한 지적 등 피드백을 주고받으며(마치 공격/수비를 하듯이) 토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발표의 전 과정을 녹취하여 발표 후에 피드백을 바탕으로 발표 자료를 수정하여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이 결과물은 책으로 엮어 다음 학년학생들을 위한 참고 자료로 이용되었다.

 

좋은 수업으로 선정한 이유

-학생이 중심이 되어 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발표 자료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수업이라고 생각하였다.

-학생들이 발표를 준비하거나, 발표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교사의 개입이 필요하며, 담당 교사가 이를 잘 지원하고 촉진하였기 때문에 교사의 관심과 역량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예 3] 

H: 학창시절 과학수업은 대부분 지식중심수업으로,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학교 시험을 위해서 단기간에 많은 내용을 배우기에는 지식중심수업이 적합한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 수업은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수업에 비해 흥미가 떨어졌고, 수업내용을 장기간으로 기억하기 어려웠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과학수업은 고등학교 2학년때 화학수업이다. ‘분자구조내용을 배우기 전에 선생님께서 분자구조모형 도구를 이용하여 학생들이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던 수업이 기억난다. 모둠 별로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여 분자가 되는지 토론해보고 분자구조모형 도구를 이용하여 실제로 분자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모둠에 피드백을 주셨고 모둠 활동 뒤에는 이론을 정리하면서 수업을 마무리 하셨다. 기존에 진행되던 수업과 달리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과 수업 마무리가 지식전달방식으로 이루어져서 모둠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수업 내용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이루어진 수업이 지식 전달형 수업보다 오랫동안 내용을 기억할 수 있어서 학습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예 4]

C: 지구과학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전부였던 저에게 더이상 학교 수업에만 갇혀 있지 마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준 지구과학 수업이 있었다. 월식에 대해 배우던 날, 선생님께서 뜬금없이 미술작품 하나를 보여주셨다.

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한 번 해볼 사람?”

 

저에게 이 그림은 조신시대 화가 신윤복의 여러 그림 중 하나일 뿐이었. 지구과학 수업시간에, 그 것도 천문 내용을 배우는 단원에서 이 그림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께서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배웠던 달의 위상을 떠올리며 유심히 들여다보니 달의 모양이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 “이 그림에 그려진 달의 모양은 일반적인 달의 위상이 아니지요. 이러한 모양은 월식이 일어날 때만 관측할 수 있답니다.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신윤복은 베일에 싸인 화가랍니다. 그의 활동시기를 특정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그가 여성이라는 추측도 있을 정도입니다. 미술학, 역사학적인 관점에서는 이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는 말이겠죠. 하지만 C대 천문우주과학과 L박사님은 그림의 달이 월식으로 인한 것이라고 가정하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연구를 진행해서 정확한 시간을 추정했습니다. 우리는 한 분야 만을 깊게 파고드는 끈기와 열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때로는 우리의 눈을 가려 다른 새로운 영역과의 융합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요?

뒤통수를 망치로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구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미술이나 인문과 같은 교양 분야와 지구과학을 접목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이 사진 하나로 학생들이 더 높은 도전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저와 친구들은 L박사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월하정인>에 적혀있는 한자를 해석하여 시간을 유추하고, 달의 고도를 통해 절기를 파악하였으며, 실제로 이 시간대에 달이 <월하정인>에서 등장하는 모양으로 보이는지 “Starry Night Pro”라는 천체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추적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날씨까지 파악한 결과 이 그림의 배경이 “1793821(음력 715)”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지구과학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지구과학 연구자로도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연구 내용을 PPT로 정리하여 과학탐구대회에서 선보이며 발표자로서의 역량도 기를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우리 발표 자료를 후배들의 수업에 활용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예 5]

J: 내가 경험한 최고의 과학수업은, 중학교 3학년 때 있었다. 학교에서 독서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학생들의 독서 능력을 기르기 위해,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도서관에 모여 밤 11시까지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사였다. 초반에는 모두 열의가 넘쳤으나, 점차, 저녁 식사 후에 피곤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독서활동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 한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서, 독서 대신 잠깐의 수업 활동을 하게 되었다. 기말고사도 끝난 후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과학의 기초는 알고 있었고, 방과후 학습이나, 자습, 학원을 통해 고등학교 과학까지 학습한 아이들도 많았다. 선생님은 이를 고려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천체에 대해서 수업을 해주셨다.

도서관에는 정전에 대비해서 많은 손전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도서관 조명을 어둡게 하고, 모두 손전등을 켜게 해서 마치 우주 공간인 것처럼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수업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내행성과 외행성의 겉보기 운동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이 때 아이들 대부분은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불을 끄고 손전등을 켜자마자 언제 졸았냐는 듯이 아이들이 깨어나서 시끌벅적했던 것이 기억에 깊게 남는다. 선생님은 안전을 위해 다른 선생님들을 여기 저기에 배치하고, 바닥에 테이프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내행성 외행성을 담당하는 아이들은 신호에 따라 한칸 씩 움직이게 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태양과 지구의 위치에서 움직이는 아이들의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게 했다. 첫바퀴, 두 번째 바퀴를 돌 때는 아이들을 대부분 태양계를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겉보기 운동 현상을 이해했다. 즉 겉보기 운동에 대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선생님이 손전등으로 특정 위치를 계속 가르키면서 보도록 지시하고, 아이들의 위치를 일부 조정하면서 점점 아이들을 천체를 절대운동처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민감한 아이들은 2바퀴 째부터 겉보기 운동을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시켜서 반 전체와 생각을 나누게 했다. 불을 켜고 해도 되는 활동인데 불을 끄고, 손전등을 쓴 이유는 나중에 대학 입학 후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듣고, 매우 감탄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손전등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이다. 손전등은 내가 볼 수 있는 시야와, 직진하는 빛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아이들로 하여금 겉보기 운동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당시에는, 학생들 사이에 발표나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재수없다, 잘난척 한다 라고 봤던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부담을 느끼고, 발표를 잘 안했다. 하지만 어두우면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도 덜 느끼고, 잘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발표나 질문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의도대로, 평소와는 달리 많은 아이들이 시끌벅적 할 정도로 의견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이 수업은 학생 입장에서도, 교사 입장에서도 완벽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학생은 학생대로 자신의 활동을 공유하는 기회를 얻고, 체험활동을 통해 과학을 학습한 기회를 얻었으며, 선생님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의 학습효과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고, 아이들로 하여금 배려와 참여를 이끌어낸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 중심의 구성주의 수업들이었다.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비교적 단순한 사례에서부터 분자 구조 모형이나 태양계 행성 시뮬레이션과 같이 모형을 활용하는 경우, 그리고 주제에 대한 조사와 발표를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미술 작품을 이용하여 과학 탐구 주제를 제시하고 직접 탐구를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간 수업도 있었다. 학생 중심의 다각적인 구성주의 수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적은 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알아보았지만, 우리나라 과학 선생님들의 수업 전문성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사회적 압력 아래에서도 훌륭한 시도를 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이 이를 느끼고 알아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파악되지 않은 더 훌륭한 수업을 하는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전통적인 강의식 위주의 수업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 예비교사로서 강의식이 아닌 다양한 좋은 수업을 중고교 시절에 경험한 것 역시 중요하다. 학생들이 나중에 교사가 되었을 때 수준 높은 수업을 할 수 있는 좋은 경험과 사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살펴본 좋은 수업 사례들은 과학 교수학습 모형을 소개할 때 출발점이 되고, 필요할 때에는 관련 부분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 될 것이다.